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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이전 사회는 과연 유토피아였을까 미분류




이렇게 <모모>라는 소설은 도둑맞은 시간, 혹은 강탈당한 시간을 성찰해볼 수 있는 자리로 우리를 안내한다. 사실 시간의 비밀을 알려면 원시시대로 돌아가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원시인들에게는 동물을 사냥하거나 과실을 채집하는 시간과 사냥한 것을 가족이나 부족과 나누며 향유하는 시간이 있다. 전자가 ‘노동하는 시간’이라면 다른 하나는 ‘사랑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사랑하는 시간이 있었기에 그들은 자신의 동굴에 벽화를 그리고 축제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원시인 누구나 노동하는 시간은 사랑하는 시간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원시적이고 고단한 삶을 영위했지만 그들은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았던 것이다. 행복이란 가급적 노동하는 시간을 줄여 인생 전체 시간에서 사랑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물론 사랑하는 시간을 위해 완전히 노동하는 시간을 제거할 수는 없다. 어떻게 배가 고픈 사람이 어떻게 타인과 사랑을 나누며, 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는 말인가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208052138515#csidx7b6c06b230ad9d5bbe0950b80ff6739 






아주 오랜 옛날 똘똘이라는 남자가 공룡을 한 마리 잡았다. 공룡을 잡아 마을로 돌아온 뒤, 그는 고기를 조금 잘라서 가족들에게 주고 나머지는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미소가 절로 떠오르는 정말 훈훈한 풍경이다. 까마득한 원시시대에는 모두 마음이 너그러워 그랬던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자본주의가 하나의 경제체제로 정착되기 전, 그러니까 100여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 어느 마을에 잔치가 벌어졌다. 산불로 마을에 뛰어내려온 멧돼지 한 마리를 용감한 돌쇠가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너무나 거대한 멧돼지여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물론 돌쇠는 기꺼이 멧돼지를 골고루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것이다. 


자본주의적 삶의 폐단은 모두 냉장고에 응축돼 있다. 자, 지금 바로 냉장고를 열어보자. 보통 위가 냉동실이고 아래가 냉장실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냉동실을 열어보자. 검은 비닐 봉투가 정체 모를 고기와 함께 붙어 얼어 있는 덩어리를 몇 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소고기인지, 돼지고기인지 아니면 닭고기인지 헛갈리기만 하다. 심각한 것은 도대체 어느 시절 고기인지 아리송하다. 아니 어쩌면 매머드 고기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냉동실에는 냉동만두가 더 냉동되어 방치돼 있을지도 모른다. 이게 만두인지 돌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이다. 보통 이런 돌만두는 새로운 냉동만두를 넣으려다가 발견하기 쉬울 것이다.
 원시시대의 똘똘이와 조선시대의 돌쇠가 자신이 애써 잡은 사냥감을 기꺼이 나누어준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당시에는 냉장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매우 맛있는 고기라고 해도 너무 많으면 혼자서는 결코 모두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애써 잡은 공룡이나 멧돼지가 아까워도 다 먹지 못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부패해서 먹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심지어 탐욕을 부려 보관하려고 하면 아마 집은 썩은 냄새가 풍기고 아울러 병균의 온상지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더 현명한 판단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항상 싱싱한 먹거리를 먹을 수 있고, 노쇠한 사람도 먹을거리가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냉장고가 문제였던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307212131165#csidx54ea2baa3fad2ce8938caf5d3711d6e 




현실은....


Scientists are investigating what may be the oldest identified race war 13,000 years after it raged on the fringes of the Sahara.

French scientists working in collaboration with the British Museum have been examining dozens of skeletons, a majority of whom appear to have been killed by archers using flint-tipped arrows.

The bones – from Jebel Sahaba on the east bank of the Nile in northern Sudan – are from victims of the world’s oldest known relatively large-scale human armed conflict.


https://www.independent.co.uk/news/science/archaeology/saharan-remains-may-be-evidence-of-first-race-war-13000-years-ago-9603632.html



강신주 교수는 원시 사회가 정이 많고 풍요로운 사회였던 것처럼 서술했습니다만, 현실은 이미 지금으로부터 13000여년 전부터 인류는 타 집단을 학살하는 행위를 벌였다는 거죠. 



강신주 교수 뿐만 아니라 인문 쪽 글을 보면 '전근대 인류는 정이 많고 행복했고, 여유가 있었지만, 자본주의가 이를 모두 엎어버렸다' 이런 식의 관점이 꽤 되더군요. 도대체 저러한 생각의 근거가 뭔지 궁금하군요. 가령 전근대의 많은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바로 영아 살해 풍습인데 말이죠. 


금년의 기근(饑饉)에 대해서 사람들이 모두 말을 하고 있지만 이처럼 극심한 경지에 이른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에 시골에 가서 보니, 처참한 정상이 차마 볼 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지금이 바로 추수하여 곡식을 마당에 들일 때인데 사람들은 모두 푸성귀를 먹고 집들은 텅 비어 있으며 대낮에 살인 강도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으니, 맹자가 ‘노약자의 시체는 골짜기를 메우고 장년(壯年)들은 흩어져 사방으로 떠나간다.’고 한 것이 진정 오늘날을 두고 한 말인 듯합니다.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대책은 다른 지방의 곡식을 옮겨다가 나누어주는 일에 불과할 뿐인데, 조정이 이 일에 대해 깊이 강구하여 양호(兩湖)의 보리와 콩을 실어다가 이미 나누어 주었으니, 매우 성대한 거조였습니다. 그러나 실어오는 곡식은 이전부터 실속이 없었습니다. 배로 운반해 올 때 물에 젖거나 사람이 짓밟아 때로는 썩어서 먹을 수 없는가 하면 축나서 실지 수량에 차지 않을 때가 있는데 사람은 많고 곡식은 적어 받아가는 곡식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곡식을 타오는 곳이 먼 데는 4, 5식(息)의 거리이므로 양식을 싸가지고 왕래하는데 으레 며칠이 걸립니다. 게다가 간악한 관리들이 수탈을 가하여 잗단 쌀이 비용으로 없어지고, 빈 자루만 가지고 돌아오는 사람이 절반이나 됩니다. 나라의 곡식인 이상 으레 환자(還上)로 돌려 내년에 수량대로 독촉하여 받아들일 것이므로 백성들은 실지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억울한 조세를 바치는 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광해군일기>





경성(京城) 백성으로 9세 된 아이 준걸(俊傑)이 이웃에 살고 있는 11세 된 아이 호량(虎良)과 싸웠는데, 호량이 구타당하여 상처를 입고 3일 만에 죽었으므로, 형조(刑曹)에서 형장으로 신문하여 자복하게 하기를 청하였다. 임금이 하교(下敎)하기를,

"사람을 살해한 자는 죽여야 한다는 법이 아무리 지극히 엄격하다고 하더라도 나이 겨우 아홉 살이면 특별히 몽매하고 지식(知識)이 없는 한낱 어린아이이다. 옛사람이 이른바 ‘만일 그의 범죄 정상을 속속들이 안다면 마땅히 슬퍼하며 불쌍하게 여길 것이지 내가 잘 적발하였다고 기뻐하지 말라’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무리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 사형으로 결단한다면 실로 너무 가엾으니, 대신들에게 의논하도록 하라."

하였다. 좌의정(左議政) 민정중(閔鼎重)·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정지화(鄭知和)가 말하기를,

"성상(聖上)의 하교가 지극히 타당합니다."

하자, 마침내 사형을 감하여 정배(定配)하도록 명하였다.<숙종실록>



"굶주린 백성들이 요즘 들어 더욱 많이 죽고 있는데 그 시체의 살점을 모두 베어 먹어버리므로 단지 백골(白骨)만 남아 성(城)밖에 쌓인 것이 성과 높이가 같습니다."

하고, 유성룡이 아뢰기를,

"비단 죽은 사람의 살점만 먹을 뿐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도 서로 잡아 먹는데 포도군(捕盜軍)이 적어서 제대로 금지하지를 못합니다."

하고, 이덕형이 아뢰기를,

"부자 형제도 서로 잡아 먹고 있으며 양주(楊州)의 백성은 서로 뭉쳐 도적이 되어 사람을 잡아 먹고 있습니다. 반드시 조치를 취하여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뒤에라야 서로 죽이지 않게 될 것이니 그렇지 않으면 금지시키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였다. <선조실록>




당장 실록 검색만 해봐도 오늘날처럼 별의별 사건 기록이 다 나옵니다. 



오히려 전근대에서 근현대로 넘어감에 따라 인권에 대한 개념이 생겨났고, 시장 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경제 주체들을 보호하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신분이 무너진 점은 덤. 



강신주 교수와 같은 인문학자들이 도대체 무얼 보고 시장 경제 발달 이전의 전근대를 그리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시장 경제 발달 이전의 노예제나 농노제 사회보다는, 자유로운 경쟁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가 더 인간적으로 보이네요. 

사회주의 성향의 경제 정책은 과연 효과적이었나? 시사

사회주의 성향이 강한 경제들이 다른 경제보다 더 낫다고 널리 판단되는 영역이 있다면 바로 소득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취해진 정책들과 그 명백한 효과들이라고 할 수 있다...(중략)...사회주의 성향이 강한 국가들, 예컨대 프랑스, 핀란드, 스웨덴과 함께 사회주의 성향이 명백하지는 않은 국가들, 예컨대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는 (예를 들면 상위 30퍼센트와 하위 30퍼센트 사이의) 불평등을 줄일 수 있었는데, 이는 모두를 대상으로 무상 서비스를 실시함으로써 소비 수준의 불평등을 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 임금 불평등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나는 것은 국가의 지출과 과세를 통한 재분배 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애초에 그러한 차이가 더 적었기 때문이었다. 즉 세전 소득의 차이가 앵글로색슨 국가들에 비해 적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매우 동질적이다. 이러한 이유 외에도 이들 지역에서는 혁신을 통해 부유해질 기회 자체가 적었다는 점도 상당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중략)







출처 - https://www.oecd.org/eco/growth/2724216.pdf



경제적 포용성, 특히 저학력 노동자들에 대한 포용성의 급격한 하락이 1980년대 사회주의, 코포라티즘, 자본주의 할 것 없이 서구 경제를 휩쓸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은 강하게 대응했다....(중략)...상대 임금 하락을 대부분 협상을 통해서 막았던 이탈리아나 스웨덴 같은 국가들은 (미국도 어느 정도는 그랬다) 훨씬 적은 대가를 치렀다. 네덜란드는 실업률 상승폭이 가장 적었다. 반면 사회당이 이끈 프랑스와 <사회적 시장>으로 불리는 독일에서는 법령이나 노조의 집단 행동과 같이 유연하지 못한 방법을 동원하여 기업들이 저학력 노동자들에게 높은 임금을 지불하게 했다. 사회주의적 성향을 띤 이탈리아와 스웨덴도 상대 임금의 뚜렷한 하락을 막기 위해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다. 이처럼 세련되지 못한 정책은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저학력 노동자들의 고용을 감소시키는 부작용이 있었다. 임금 측면에서는 사회주의가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 고용 측면은 악화된 것이 <함정>이었다. 


by 에드먼드 펠프스, '대번영의 조건' 중에서 



개인적인 감상평 : '이 세상엔 공짜 점심은 없다'

스웨덴 복지 논의에서 흔히 간과되는 점 시사

1. 법인 소득세 - 22%

OECD 34개국 중 23번째로 낮음

2. 상속세 - 05년도 폐지

3. 증여세 - 05년도 폐지. 단, 상속 또는 증여 받는 자산을 처분시 발생하는 이득에 대해 30% 과세


4. 자본 수익 부과하는 부유세 - 07년도 폐지


출처 - 주 스웨덴 대한민국 대사관 사이트


물론 개인 소득세 등 기타 세율은 높긴 합니다만, 우리나라에 알려진 이미지와는 거리가 좀 멀죠.

민간은 깨끗한 물을 공급할 수 있을까? 사회과학

민간의 물 공급 계획이 성공한 곳도 많지만 이것은 두 가지 문제의 소지가 있다. 우선 소비자들은 수질을 쉽게 검증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물 공급업자들은 수익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원칙을 무시하고 일할 수 있다. 또한 민간 공급업자가 깨끗한 물을 보증할 수 있더라도 고객들이 항상 공급업자가 수익을 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을 쓸 의사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두 가지 문제는 모든 사람이 물을 마시는 대가로 계속 많은 돈을 낼 수 있고, 일반적으로 물 공급업자가 약속을 어길 경우에 감당해야 하는 법적 소송 때문이라도 건강한 물을 제공하는 부유한 경제에서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해밀턴(발췌 주 : 미국의 초대 재무부 장관)과 버(발췌 주 :1801년부터 1805년까지 미국의 부통령)가 살던 시대에는 부유한 시민들은 깨끗한 물을 구하러 시 외곽으로 하인들을 보낼 수는 있었지만 가난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시내로 공급되는 싸고 더러운 물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부유한 시민이 아무리 미리부터 조심한다고 해도 가난한 지역에서 발생한 전염병이 값싸고 더러운 물을 통해서 시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었기 때문에 나쁜 물은 여전히 부유한 시민과 그 가족을 죽일 수 있었다.


이것이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외부 효과'라는 것인데, 외부 효과란 어떤 개인이나 기업과 같은 경제주체의 행위가 수요·공급과 같은 가격 결정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다른 경제주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1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경제학자들은 외부 효과에 대해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는데, 물 역시 마찬가지였다.


뱅크 오브 더 맨해튼이 뉴욕의 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탓에 그후로도 수인성 전염병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뉴욕 시는 특정 연도에는 전염병 때문에 인구의 0.5퍼센트 이상을 잃기도 했고 1832년 콜레라가 전염됐을 때처럼 보통 해에도 사망률이 두 배가 올라갔다.



마침내 뉴욕 시는 필라델피아를 본떠서 해밀턴이 경고했던 대로 수백만 달러의 공공 물 공급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약 900만 달러(2010년 가치로 환산했을 때 약 1억 7,000만 달러)를 들여서 건설한 크로톤 수도교는 1842년 이후 뉴욕에 깨끗한 물을 공급해 주었고, 그러자 곧바로 효과가 나타났다. 1860년 이후 사망률은 무려 60년 동안 하락했다. 남북전쟁이 끝날 무렵만 해도 1,000명당 30명이 숨졌지만 1920년대에는 1,000명당 사망자 수는 10명 정도에 불과했다.



(중략)


경제 역사가인 베르너 트로에스켄은 엄청난 연구 끝에 시의 급수 시설 투자가 황열병 등 여러 질병들로 인한 사망자 수를 크게 줄여준 사실을 알아냈다. 깨끗한 물은 심지어 물로 인해서 전염되지 않는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까지도 줄여주었다. 매사추세츠에서 깨끗한 물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1세기 전 연구를 되풀이하듯이, 트로에스켄과 조셉 페리에는 1850년부터 시카고에서 황열병 발병률이 하락하자 다른 질병들의 발병률이 더 크게 하락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수인성 질병이 다른 질병으로 오인되거나 아니면 수인성 질병으로 인해 면역 체계가 약화되면서 다른 병들로 인한 사망자 수도 줄어들었을지 모른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페리에와 트로에스켄은 "순수한 물 공급이 1850~1925년 사이에 시카고의 사망자 수 감소 원인의 30~5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믿었다.



깨끗한 물 공급은 인프라에 대규모 공적 자금 투자가 이루어졌기에 가능했다. 파리의 거리에서처럼 다라비의 빈민가에도 수인성 질병을 없애기 위해서는 정부나 혹은 적절한 보조금을 받고 규제를 받는 민간 기업들 중 하나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 에드워드 글레이저, 도시의 승리, 2011 -




다만 위의 사례를, 공적 인프라와 시장 경제가 잘 구축된 현대 선진국의 수도 민영화 논쟁에 대입하기에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는 걸 명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위 자료의 챕터부터가 개도국 도시의 문제 해결에 대한 파트입니다. 




JP 사망했네요 시사




3김 중 권력의 정상에 가장 가까웠지만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던 인물....


3김 시대도 이제 역사책에서만 볼 수 있는 단어가 되겠군요.


최태민 등 정치 비화를 더 밝혔으면 좋았겠지만, 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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